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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미로 훑어본 四柱일기] 후한(後漢) 광무제론(光武帝論)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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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74
내용

고조의 6대손貴相이지만 찢어지게 가난

재색 겸비한 음려화가 선뜻 청혼 받아줘

얼떨결에 민중봉기의 지도자가 돼

수배자로 쫓기다 왕망 무너뜨리고 황제등극

 


명리학교과서의 대표적 영웅사주 사례로

생년월일만 안다면 사주팔자 네 기둥을 세우고 운의 흐름과 길흉화복을 계량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역사 속 인물들은 생몰연대가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생일이 명확한 인물이 주로 텍스트로 다뤄진다.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BC5~AD57). 후한서에 그가 태어난 생시까지 정확히 기록돼 있다. 청나라 때 명리학자 원수산이 쓴 명리학교과서 명보(命普)도 대표적인 영웅사주 사례로 소개한다. 과연 영웅의 드라마틱한 삶은 예정된 수순이었을까. 곤양성 전투에서 조정의 100만 대군을 불과 3000군사로 대파했다는 사실(史實)이 아닐까. 그는 가난한 농민에서 혁명가로 변신해 우여곡절 끝에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가 될 만한 천운을 타고난 것일까. 결론적으로 그는 충분히 대영웅의 서사시를 쓸 만한 정석 교과서적 사주팔자다. 생사를 건 민중봉기, 백척간두의 물구나무서기처럼 위험한 유혈혁명에 뛰어든 것 자체가 타고난 운명이었다. 의리 있는 부하와 힘 있는 권문세가, 재색을 겸비한 여인들을 다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새 왕조를 창업한 인생역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 일 월 년 (대운, 만 나이)

()()()() 64 54 44 34 24 14 4

()()()() 임 계 갑 을 병 정 무

오 미 신 유 술 해 자

 

BC6126일생(음력), 태어난 날은 곧은 나무로 비유되는 갑자(甲子) 일주. 나무의 일생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 세상에 뽐내듯 자신만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땅에 떨어뜨려 자비롭게 동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때문에 향상심과 명예욕이 남다르다. 인수(印綬) 별을 일지에 깔고 있어 한나라 왕실 적통계승에 관한 관념도 강했다. 더욱이 반듯한 처세가 특징인 정재격(正財格). () 기세가 강하고 중화를 이루니 성품이 곧고 차분하며 신중했다. 치밀한 논리에 수완가였지만, 동시에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측은지심을 지닌 이였다. 기축월 ()’에 내장된 지장간 계()()()중 기토가 천간에 투출돼 부자사주인 정재격이 성격됐다. 특히 많은 군주가 거쳐간 귀격인 잡기재관격을 겸했다. 이 점이 사주의 핵심. ‘은 보물창고이므로 창고 빗장을 열어주는 대운을 만나면 대발한다. 기토와 축토는 정재로 재산, 아내, 인기, 대중(大衆), 관운의 주춧돌 등을 의미한다. 월지 창고를 충()하는 운로에 혁명을 시작해 이 모두 한 손에 움켜쥘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정재가 둘, 편재가 하나이니 왕비도 절세가인 음려화(陰麗華)와 제2황후 곽씨 등 여럿이었다.

고관대작 자제의 구혼 거절, 가난한 총각 선택

이름은 유수(劉秀). 후베이성이 고향으로 한()나라 고조 유방의 9대손. 타고난 관상부터 비범한 귀인상이었다고 전한다. 겨울 태생 사주여서 육친상 친부모에 해당되는 수 기운이 강하다. 여기에 초년 대운에 또다시 차가운 눈비가 쏟아진다. 그래서 어릴 때 부모 인연이 희박했다. 그는 9세 때 부친을 잃고 형과 함께 숙부 집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지냈다. 한 때는 관직을 꿈꾸며 장안에 가 태학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벼슬을 한다면 궁문수비병 집금오, 아내를 얻는다면 음려화(陰麗華).”

집금오는 평민들에게 위세께나 부릴 수 있는 낮은 관직이었고, 음려화는 당시 소문이 자자한 미인이었다. 유수는 이런 소박한 희망사항이나 얘기하며 부러워하고 다니던 평범한 종실의 한 사람이었다. 음려화는 얼굴도 아름다웠지만 지혜롭고 의협심 강한 보기 드문 재원이었는데 웬일인지 당대 고관대작 집안의 열화와 같은 구혼을 계속 거절했다. 그러다 유씨 집안에서 청혼이 들어왔다는 말 한마디에 선뜻 결혼에 응했다고 한다. 유수가 원래 진중하고 원만한 성품에 평판이 좋았기 때문. 일설엔 태학에서 공부할 때부터 서로 은근히 호감을 갖게 된 사이였다고도 한다. 음려화는 유수와 함께 말 달리고 활 쏘며 전쟁터에 뛰어들 정도로 여장부 기질도 있었다.

 

無官사주난세라 관운 없는 게 더 나아

유수는 무관(無官) 사주. ()이란 국록을 먹는 관리인데 공교롭게도 이때는 관직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관운이 약한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때는 왕망이 찬탈해 세운 신()나라 말기. 신은 관리들의 무리한 식량 징발과 폭압정치로 민심을 잃었다. 수탈에 신음하다못해 전국 각지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은인자중하던 유수는 얼떨결에 반란세력의 지휘자가 된다. 가난뱅이라 말 대신 소를 얻어 타고 형과 함께 거병했다. 25세부터 10년간 병술 대운이 찾아오자 위험천만한 반역자가 된 것. 천간의 병()화 태양 운은 나무가 꽃을 피우듯 큰 뜻을 마음껏 펴는 식신운. 또한 대운 지지의 술()토 운은 대중의 큰 인기를 얻는 재운이었다. 주목할 것은 축술형(丑戌刑)으로 대운과 사주 월지가 충한 것. 보물창고를 두드려 활짝 문을 연다. 죽거나 죽지 않으면 지존이 되어보라는 잡기재관격 충극(冲克) 운세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왕망의 100만 대군을 3000명으로 물리쳐

AD23, 왕망이 보낸 토벌군 100만이 곤양성을 포위 공격했다. 유수는 불과 13기만을 거느리고 성을 기적적으로 탈출한 후 3000의 원군을 모아 다시 대군과 맞붙어 승리함으로써 명성을 날린다. 그러자 조정에서 유수의 목에 10만 호의 상금을 걸고 수배에 나섰다. 유수는 그의 인간미에 감화 받은 몇몇 부하만을 데리고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된다. 산 속에서 어렵사리 화톳불을 피우고 보리죽으로 연명하면서도 뜨거운 동지애로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냈다. 관에 쫓기는 도망자가 세()를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중에 두 번째 황후가 되는 여인과의 정략결혼. 그는 군사 10만여 명을 거느리고 있던 왕족 유양의 조카 곽성통과 혼인한 후 순풍에 돛단 듯 사기충천한 대군을 이끌고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결국 왕망정권을 붕괴시킨다. 전국을 모두 평정해 황제로 등극한 것이 그의 나이 31세 때.

두 번째 부인을 얻는 데 성공한 것이나, 백성의 마음을 얻고 큰 군사를 거느리게 된 것 모두 재() 창고를 여는 ()’ 운 덕이었다. 술 대운이 축술형()으로 월지를 충극하자 창고 속의 지장간 기()토 정재(아내·민중)와 신()금 정관(명예·직위) 등이 다 밖으로 쏟아져 나와 그의 품에 안겼다. 전국의 모든 군사를 항복받고 끝내 중국의 통일을 이룬 그에게는 유()(), 안정적인 관()대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심 수습해 200년 후한왕조 기틀 다져

() 대운까지 널리 어진 이를 찾아 등용하고 민심을 수람하는 다양한 정책으로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꾀해 200여년 후한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이때를 광무중흥기라 부른다. 그러나 미 대운은 노인이 된 유수의 생명의 기반인 월지를 축미충으로 두드려 부수는 동시에 년주 토끼띠 묘()목과 합해 내 것을 빼앗아가는 겁재 운이었다. 그리하여 그도 어쩔 수 없이 미 대운 끝 무렵인 63세에 낙양에서 눈을 감았다. 

 

한병권(30회) 편집위원
/

미즈아가행복작명연구원장, 

천지일보 논설위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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