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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아이즈]시인 한병권 "아파하는 영혼 치유위한 시 계속 쓰겠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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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뉴시스아이즈]시인 한병권 "아파하는 영혼 치유위한 시 계속 쓰겠다"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 일간지 기자 출신인 역학연구가 겸 시인 한병권(55) 씨가 최근 첫 시집 ‘비어 있음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젊은 날의 고뇌와 현재 생활을 정리한’ 시 5부 79편이 담겨있다. 문단에서는 미미한 위치이지만 20여년 기자생활을 거쳐 뒤늦게 시집을 낸 의지와 ‘운명감정사’라는 현재의 하는 일 때문에 눈길을 끈다.

한국일보 ‘오늘의 운세’ 코너를 집필해온 남광 한가경 도사로 잘 알려져 있는 한 시인은 독특한 커리어가 말해주듯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 부산의 명문 경남고를 출신인 그는 영남대 법학과에 재학 중인 78년 시문학지 대학생문예 시 부문에 가작으로 당선돼 시작(詩作)과 인연을 맺었고, 이어 영대(嶺大)문화상까지 받아 부산에서 나름 문명(文名)을 날렸다. 성철, 경봉 등 당대 최고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 선문답을 하며 참선 수행에도 몰두했다.

국민일보에서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 취재기자와 사회·정치 부장대우를 거쳐 스포츠레저부장을 지냈다. 2007년엔 대통령 후보 특보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이다.

신문기자 시절을 그는 “20여년의 기자생활이 독약을 마신 것처럼 위험했다”고 회고한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부 정치부 문화부 취재기자 생활을 하면서 삶이 뒤죽박죽이 돼 버렸어요. 저녁에는 거의 매일 취재원, 회사동료들과의 술자리가 이어졌고 폭탄주 때문에 실수도 많이 했어요. 반듯하게 에러 하나 없이 모범적으로 기자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을 테지만, ‘한 기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종을 추구하고 낙종에 우는’ 바쁜 기자 생활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지나친 경쟁에 매몰되다 보니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고, 참선 수행과 시작(詩作)에 게을러지고 멀어지게 된 것이 마음 한 구석에서 늘 불만스러웠죠.”

그래도 틈틈이 시작을 계속해온 그는 2005년에 농민문학 가을호에 ‘나를 찾는 일’ 등으로 신인상을 받아 문단에 본격 등단했다. 2006년 아테네 올림픽 직후 인생관을 바꿨다. 대학 때 즐겼던 시와 명상 그리고 역학 공부에 다시 몰입해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명상(참선) 수행을 다시 시작하면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자연스레 시상(詩想)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시작(詩作)에 재 몰입하게 됐어요. 명상 중에 떠오른 단상(斷想)들을 기록해 시를 썼지요.”

그의 시 하나가 2007년 시낭송으로 라디오 공중파를 탄 것이 인생노선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됐다.

‘‘나는 안다/내게 많은 게 부족하고 비어 있음을/여백 듬성듬성 희멀겋게 드러나는 머리숱/짧은 혀, 작은 목소리, 재능 없는 춤 솜씨/늘 모자라는 잠/메마른 눈물, 웃음다운 웃음 사랑에/목마른 가슴/그리고 또 있구나, 진정 낮은 곳/지저분한 곳도 외면하지 않는 겸손 같은 것/ 채워져야 할 게 채워지지 않고 있지만/또한 나는 안다, 채울 것/채우지 못하고 비어있음…’ (‘비어 있음에 대하여’)

CBS FM ‘저녁스케치’에 낭송된 이 시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네티즌들이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그의 시를 찾아 퍼 날랐다. 인터넷 공간에 그의 시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제 체험을 중심으로 아파하는 영혼, 힘든 영혼들의 치유를 위한 시를 계속 써보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곧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의 생활을 시작했다. 처자식이 있는 그로서는 무모한 결정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 사색하고 명상하며 늦도록 깨어 있어도 되는 게 좋았다고 한다.

“생활을 위해 강서 메즈메디 병원 옆에 작명연구원 간판을 내걸고 사무실을 열었어요. 낮에는 신생아 작명과 인생 상담에 주력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참선 수행과 산책 시쓰기 등 유유자적한 생활을 5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가 역학(易學)과 관련을 맺게 된 것은 집안 내력이다. 영어 교사였던 부친의 영향을 성장과장에서 많이 받았는데 클래식에 조예를 갖게 된 것도 어릴 때 부친이 옛날 축음기로 들려준 고전 음악 선율 덕분이다. 사주 명리학의 뿌리와 기초 역시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아버님께서 사주를 봐주시는 장면을 어릴 때부터 옆에서 보며 자연스럽게 역학에 젖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명리학(命理學) 이론을 공부했어도 실생활에 적용해 풀어내는 게 어려운데,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웠으니 좌판 까는 일이 쉬웠지요.”

시인이 사주까지 보는 게 어색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사주가 실은 인생 상담이다. 답답하고 불안한 삶의 고뇌에 동참하고, 맺힌 것을 풀어주면서 저 역시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leeds@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99호(10월23~29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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